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사황후 두씨 (문단 편집) == 생애 == 165년에 환제의 두 번째 황후였던 [[효환황후 등씨]]가 폐위되자 귀인이 되었으며, 겨울에 새 황후가 되었지만 [[환제(후한)|환제]]가 궁녀 전성을 총애하자 환제를 거의 보지 못했다. 167년에 환제가 붕어하자 황태후가 되었으며, 환제에겐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임조칭제하여 해독정후 유굉을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영제(후한)|영제]]다. 평소에는 투기가 심하고 성품이 잔혹했으며, 환제의 관이 전전에 있음에도 환제가 총애하던 전성을 살해했다. 여러 귀인을 모두 죽이려 했지만 중상시 [[관패]]와 [[소강(삼국지)|소강]] 등이 간하자 이를 그만두었다. 이후 아버지 두무와 진번이 환관들을 주살하려고 여러 차례 조칙을 구했고 동의를 구했으나, 내시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상당 부분 인간적인 정이 들어버린 나머지 반대하며 협조가 미온적이었고, 때문에 두무의 실패에 간접적으로 공헌하고 만다. 이후 두무가 환관들을 주살하려다가 도리어 살해되자 중상시 [[조절(삼국지)|조절]]이 거짓 조서를 내리면서 남궁 운대로 옮겨졌고, 살아남은 두씨 일족은 일남군(베트남 중부) 비경현으로 유배보내졌다. 두씨들은 주살되었지만 [[영제(후한)|영제]]는 두태후가 자신을 옹립한 공이 있다고 여겼으며, 171년에 친히 신하들을 이끌고 남궁에서 알현해 음식을 대접하면서 장수를 빌어주었으나, 내시 집단들이 전반적으로 이 황후를 대단히 미워하였기에 내내 찬밥 신세로 대우가 시원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단초가 아버지인 두무를 밀어주지 못한 본인의 우유부단한 미적거림이 이유였으니 변호해줄 이유가 적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태후의 프리퀄격인 인물.[* 그나마 하진은 하태후의 이복오빠였지만 두무와 두묘는 친부녀관계였으니 더하다면 더한 부분도 있다.] 두무를 진압한 인물이 하필이면 동탁의 직속상관이자, 한때 동탁의 군단을 지휘했던 장환이었던 것도 기막힌 인연이다. 172년에 두묘의 어머니가 비경현에서 세상을 떠나자 상심한 끝에 병을 얻어 붕어하였다. 그녀의 사망 직후 장례에 대한 회의에서 조절은 두 태후를 황후가 아닌 귀인(貴人)의 예로 장사지내려 했으나, 앞서 장수를 빈 이유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황제로 옹립한 것을 감사하게 여긴 영제가 반대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환제의 묘소에 합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 [[환제귀인 풍씨]]를 대신하여 황후의 예로 합장시키고자 하였는데, 죽음을 불사하고 이를 저지하고자 한 태위였던 [[이함]]과 [[진구(후한)|진구]] 등 백관의 반박으로 결국 환제와 함께 선릉에 합장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